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 지혜의 수행자(Jnani)와 헌신의 수행자(Bhakta)는 체질적으로 다르다 738-741

은가루리나 2018. 5. 4. 14:04


PP182-183




□ 지혜의 수행자(Jnani)와 헌신의 수행자(Bhakta)는 체질적으로 다르다





738. 여기 두 종류의 구도자가 있다. 

어린 원숭이와 같은 구도자와 고양이의 새끼 같은 구도자가 있다. 


어린 원숭이는 엄마원숭이에게 꼭 달라붙어 있지만 

그러나 고양이의 새끼는 그러질 못하고 야옹야옹 울기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어미고양이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새끼원숭이는 잡은 손을 놓치면 떨어져 다친다. 

왜냐면 그가 어미로부터 땅에 떨어지고 안 떨어지고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끼고양이의 경우는 이런 위험은 없다. 

어디를 가든지 어미고양이가 물고 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구도자에도 두 종류가 있다.


지혜의 길, 


즉 자기자신을 비우는 수련의 길은 

전적으로 구제를 얻으려는 자기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랑의 길을 따르는 수행자는 

신만이 모든 것의 조정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확고한 믿음으로써 그 자신의 모두를 신의 자비에 내맡겨 버린다. 

전자는 어린 원숭이와 같고 후자는 고양이 새끼와 같다.




739.  즈냐니는 말한다. 

「나는 그다. 나는 순수한 아트만이다.」


그러나 박따는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영광이다.」




740.  다음의 세 가지 태도 가운데 

어느 하나를 확립할 때만이 인간은 신을 깨달을 수 있다.


① 이 모든 것은 나다.

② 이 모든 것은 당신이다.

③ 당신은 주인이요, 나는 당신의 하인이다.




741.  쉬바의 영혼으로 태어나게 되면 그는 즈냐니가 된다. 

그의 의식은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입장으로 기울고 있다. 


「브라흐만(神)만이 진실이요, 이 세상은 모두 거짓이다.

그러나 비슈누의 영혼으로 태어난 사람은 믿음과 헌신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박띠의 요소들이, 

강한 이론의 도입과 논리적인 지식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위축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것들(믿음과 헌신)은 

야다바(Yadava)* 왕국을 멸망시킨 유봉(乳棒)처럼 팽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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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va : 자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