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 일(Work)과 일 없음(Worklessness) 760-763

은가루리나 2018. 5. 30. 01:49


pp189-190




□ 일(Work)과 일 없음(Worklessness)



760. 인간에게 순수한 사트바(Sattva)가 깨어날 때 그는 오직 신만을 명상한다. 

그리고 그것 이외의 어떤 일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전생(前生)의 선업(善業) 때문에 이 순수한 사트바의 성격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신에게의 헌신과 남에게 봉사하는 일을 계속함으로써 

이 순수한 성질(사트바)이 개발될 수 있다. 


만일 이 사트바에 라쟈스(Rajas)가 섞이게 되면 

마음은 여러 방면으로 분산되며 다음과 같은 에고의 느낌이 생기게 된다. 


「나는 이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이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려는 보통사람에게 있어서 고차원적인 독소(毒素)다


그러나 오직 남의 이익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면 그때는 아무 위험이 없다. 

이런 종류의 일을 니쉬까마 까르마(Nishkama Karma)라 부른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들은 아주 어렵다.




761.   모든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순수한 사트바는 오직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발견된다. 

집착이 없이 (神에 대한) 헌신적인 마음으로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사트바는 그의 라쟈스의 요소를 정화(淨化)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순수한 사트바의 성취에 의해서 그는 신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사트바의 이 순수한 경지를 이해할 수 없다.




762.  일로부터의 벗어남은 

신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가슴이 복바쳐 오를 때 저절로 온다. 


일을 하라. 

신이 그대에게 부여한 일을 하도록 하라. 

시간이 무르익을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라, 내 영혼이여, 가슴에 앉힐 신을 주시하라, 내 영혼이여」 

---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763.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처음에는 까르마의 소동이 대단하다. 


그러나 우리가 신에게 향하면 그럴수록 까르마의 소동은 적어진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삼마디를 성취하게 된다.  


보통의 경우 육체는 삼마디를 얻은 후에는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일부러 이세상에 오래 머무는 수가 있다. 


성자 나라다(Narada)와 신의 화신 슈리 챠이타냐(Sri Chaitanya) 같은 사람이 이런 경우다. 

우물을 판 후에는 삽과 가래를 모두 내던져 버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연장들을 내버리지 않고 보존하는 경우도 있다. 


이웃사람들이 우물을 팔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위대한 영혼들은 세상의 고통에 대하여 한없는 연민을 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즈냐나(지혜)만을 고수하는 그런 이기주의자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