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강론

2018년 7월 19일 목요일 무위신부님 강론

은가루리나 2018. 8. 5. 01:43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찬미예수님!

오늘 말씀은 어울리지 않은 표현이 있어요. 좀 아이러니해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소나 말이 길을 가면서 짐을 지려면 멍에가 있어야죠.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억압하는 것이 멍에에요. 얽어매고 구속하는 것. 

짐, 너는 내 인생에서 짐이야. 짐. 사람을 고생시킨다는 거죠. 어떻게 가벼워요.

그러나 하느님의 진리는 역설적이에요.

세상의 논리와 지식을 넘어서는 거에요.


정말 하느님이 주시는 멍에,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명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절대로 어렵지 않아요.


나는 직장생활 그만두고, 그때부터 열심히 잘 살거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어요.

하느님의 계명과 가르침은 무엇을 얽어매고, 멍에가 아니에요.

저도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느님을 만나야 해요. 하느님 만나기가 너무너무 쉬운데, 너무너무 쉬운데,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서에요.


우리 교회가 지금 심각한 거에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없는 것은 신앙이 아니에요.


요즘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 수원교구, 정영식신부님, 영성전공이신데, 심리상담 공부하신 분이시고,

이 신부님의 글을 올리는데, 이 신부님 쓰신 글을 보면,

하느님께 내맡기지 않으면 안된다고 해요.

이 신부님보다 저의 영적 체험이 더 깊어요.


저는 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저같은 신부놈한테 오셔서 당신을 체험시켜주신 주님을 찬미하기 위해 이런 자랑을 해요.


정말 어떤 신부님처럼 그렇게 성인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런 것이 아니고,

저는 직장인처럼 살았어요.

근데, 저처럼 특수사목을 9가지이상 한 신부가 없어요.


저는 내맡김영성이라고 하지만,

정영식 신부님은 냅둬영성이라고 해요, 한마디로 렛잇비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거에요.

우리 평화방송 정말 볼 거 없어요. 안타까워요.

이름도 정말 돈 많이 주고 바꿨잖아요. 평화방송이라고,

평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건데, 아니에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거에요.

무조건 물줄기가 하나여야 세게 나가는 거에요.

가톨릭은 가톨릭적으로, 개신교는 개신교적으로 나가야해요. 외곩수로 나가야해요.


저는 어제 개신교 방송을 보는데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그래요, 모든 것 모든 것 다 맡기면 안된대요.

자기가 최선을 다하고 난 뒤에 주님께 맡겨야 된다고....

저는 그것 보고 아니야!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어요.


인간이 하는 것은 한계에요, 한계.

뭘 하느님앞에 젖먹이 똥싸개가 암만 잘 할 수 있는게 없어요. 잘 받아먹고 건강히 자라는 게 중요하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어요.

다 맡기고 해야지.


내맡김의 체험이 없어서 그래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주님께 내맡김이에요.

정신부님이 쓴 글 중에서도 있듯이,

정말 하느님께 맡기면, 하느님의 멍에를 매면,이 멍에가 든든한지...

일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이제 내가 끄는 것이 아니고 멍에가 끄는 거에요.

이제 더욱 더 나는 안해요.


그래서 저의 이메일 주소가 mooweehaeng 이에요. 무위행.

가장 주님께 드리는 것, 하느님 주시는 자유의지를 반납하는 것,

내 뜻을 맡기고 하느님의 뜻을 짊어지는 것,

그것이 멍에에요. 멍에, 그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살게끔 해주세요.

일단 내맡기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요.

의지적으로 내맡기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얻게 되요.


하느님을 아무나 사랑할 수 없어요.

어떤 누가 나를 사랑한다고, 무조건 나를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어요?

하느님이 나에게 애덕을 주셔야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어요.


하느님이 하느님의 멍에를 지어주는 사람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봐요

미사 끝나고 나가면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에요.

1독서에서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이루신 일입니다.'이 말씀이 바로 그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쁜일은 하느님을 찬미 해드리는 일 밖에 없어요.

하느님을 찬미해드리는 것은 뭡니까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드리는 거에요.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느님이름을 부르게되요.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에요.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이것이 끊임없는 기도에요.


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면,

하느님이 내 안에 자리잡고 사시는 것이에요.

하느님의 멍에를 짊어지게 되면, 그 때부터는 참자유인이 되요.

죄 십계명, 범할 수 있어요. 오로지 주님께 내맡기고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죄를 통해서 주님께로 이끌어 주셔요.


죄죄죄죄 얽매임, 이 인간의 멍에를 벗어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내맡기기 전에는, 죄의 밑에서 살아왔지만,

하느님의 계명 위에서 살수 있어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 이책 읽어보신 분 계셔요.

이런 책을 우리 엄마가 읽었어요. 저는 그런 책 읽지 마라고..그랬던 신부에요.

성부하느님의 메세지를 직접 받은 사람은 마더 에우제니아수녀님 이에요.

이 수녀님이 결코 오래전의 사람이 아니에요.

프랑스 어느 교구에서 대주교님의 승인을 받은 책이에요.

성서 밖에 있는 성서에요.


인간이 참자유와 행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성부하느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41. 참자유와 행복을 누리려면


1

사람은 진리 안에 살고 있지 않는 한,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없다. 


참된 '법' 밖에서 살고 있는 내 자녀들인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만들어 주면서 지키도록 했던 그 법을 따라 살지 않아도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2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참 평화나 참 기쁨이 없음을 느끼고, 

너희의 창조주요 하느님이요 아버지인 분에게서 오는 참 자유도 못 누리고 있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참된 법 안에 있으면서도,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너희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려고 내가 준 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악습이 이끄는 대로 악에 기울어지고, 

그 악한 행실로 말미암아 이 법에서 벗어난 이들이 있다. 


3

그런데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느냐?

아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느낄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쾌락이나 다른 인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마침내 너희 마음이 만족을 얻을 성 싶으냐?

아니다. }


분명히 말하지만,

나를 아버지로 인정하고 내 멍에를 매고 너희 하느님 아버지의 참자녀가 될 때라야,

비로소 너희는 참자유와 참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단 하나의 목적을 두고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알고 단순하게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섬기듯, 나를 섬기게 하려고,

내가 너희를 지어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 인정하고 아버지의 뜻, 그분의 멍에를 짊어질 때

참자유와 참평화의 삶을 느끼고 산다는 것을 믿으시고,

모든 것 주님께 맡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