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4장] 1. 고통

은가루리나 2019. 2. 21. 00:16



제4장 고통. 표상. 시간. 일치




1. 고통


나는 런던 교육병원의 외과 학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큰 외과 수술을 받는 환자들에게 수술 전후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법을 가르치는 연구 과제를 거의 끝마쳤다. 통증 완화에 대하여 내가 알고 가르치는 것 대부분이 에카르트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첫째, 정신과 육신은 하나다. "영혼은 몸 전체 안에 있듯이 가장 작은 지체 안에도 있다." 육신이 고통받을 때에는 정신도 고통받는다. 또한 정신이 고통받을 때에는 육신도 고통받는다.


둘째, 아픔과 고통은 삶에서 필수 부분이다. 아픔을 느낄 수 없도록 태어난 소수의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남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아픔은 위험을 예고해 준다.


셋째, 고통을 이겨내려면 참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인내와 수용은 둘 다 신체적 상태이며 동시에 정신적 상태이다. 인내는 무언가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그것을 결국 사라져야 할 잘못된 것으로 보며,하느님께서 실수를 하셨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참을 수 있는 힘은 그 고통이 끝날 때를 바라보는 데서 온다. 참을 때는('참다',곧 영어의 endure라는 단어 자체가 '단단한, 힘든'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신체가 긴장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몸에서 분비되는 일종의 마취 성분인 엔돌핀이 잘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고통 - 참음 - 긴장, 다시 고통 - 참음 - 긴장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뿐이다. 에카르트가 "모든 고통은 사랑하는 데서, 그리고 애착하는 데서 온다"고 한 말은 스토아 학파의 '참음'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대안으로 '사랑하지 않고 마음을 쓰지 않음'을 제시할 때 그는 초탈(超脫,마음을 비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모님께서 초탈하여 당신 아드님의 고통에 대해 "애정을 품고 걱정하는 것"에 빠져들지 않으셨던 것은 아드님에 대해 가지셨던 진정한 사랑의 증거가 아닌가? 그분이 아드님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분명 성모님이 그 아드님께 드릴 수 있었던 가장 큰 도움은 자신에게 살아 남을 힘을 주신 하느님의 뜻에 신뢰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해서 성모님은 아드님께 힘을 드릴 수 있었다.


수용은 평온한 상태다. 평온한 사람은 지금 이순간을 산다. 현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과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에카르트는 "모든 고통은 사랑하는 데서, 애착하는 데서 온다"고 말한다. 사실 그렇다. 만일 "내가 아직도 시간의 사물들을 움켜쥐려고 한다면", 내가 하느님의 의지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때 나는 하느님과 맞서서 겨루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에카르트는 계속해서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법, 긴장을 푸는 법을 모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것을 계속 배워왔다.) 우리 본성 안에는 아픔과 고통을 받아들여 '고통스런 삶 안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환자들이 청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고통에 맞서 의지와 노력으로 싸우기보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긴장을 풀고 고통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하는 동안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고통이 가벼워진다. 자기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알게 되면 고통과 아픔을 다스리는 방법은 그의 삶 전체를 위한 계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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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안에 평화와 안식을 누리는 삶은 좋은 삶이다. 인내하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은 더 좋은 삶이다. 그러나 고통스런 삶 중에서도 평화를 누리면 가장 좋은 삶이다.


의로운 사람에게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 공평하지 못한 일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어떤 것은 그대를 즐겁게 하지만 또 어떤 것은 우울하게 한다면 그대는 한결같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의를 신봉하는 사람은 안정되어 있어서 그의 삶 자체를 사랑하고 아무것도 그를 당황하게 하지 못하며 그는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대를 목적지에 가장 빨리 데려다 줄 말은 고통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깊은 고통을 견디는 사람만이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고통은 담즙처럼 쓰지만 견디어 내면 꿀처럼 감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