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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위무위신부님의 댓글모음

은가루리나 2020. 4. 20. 21:20


moowee10.06.03 21:31

성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체는 하느님의 실재이며,
하느님의 실재는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이십니다.

성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성체를 모시고 살아가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도우심의 가장 큰 은총을 받는 방법이 바로 "내맡김"입니다.

하느님께 내맡기면
성체신심, 예수성심, 성부 아버지의 마음에 곁드려
"성모성심"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축성식때 오셔서 봉헌미사를 봉헌하면 그 길이 열리게 됩니다.



moowee 10.12.15. 18:23

아래(肉)로 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위(靈)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3,3)

"내맡김"은 靈으로 다시 태어나는 가장 탁월한 길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어 나(我)는 없어지고
마침내 내 안엔 하느님만이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moowee 11,01,10, 17:46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걸 내맡기면,
성령의 어던 특별한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 본체이신 하느님을 받게 됩니다.

성령의 어떤 은사에 비할 수 없는 큰 선물을 받게 됩니다.

내맡김의 "가장 큰 탁월함은"은
한 번 받은 성령이 다시 나에게서 나가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 100% 내맡긴 영혼에 한해서 말입니다.

내맡김의 봉헌을 할 때,
자신이 한 굳은 결심이 "맹세" 였다면 100% 내맡긴 것이며,
100% 내맡긴 영혼은 지금은 단점 투성이이고 가끔 죄에 떨어진다 해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날이 다 정화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moowee11.03.02 22:22

거듭남은 "위로부터 태어남"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남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아래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아래로 태어난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3,3)



moowee 11.03.13 08:37

하느님을 찾아얻어 성령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성령을 받은 것과 성령의 역사"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통찰력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에게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1코린2,12)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1코린2,7)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안다."(마태7,15)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갈라5,22)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자랑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자랑하기 위한 자랑은 "힘있는 자랑"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2코린10,17)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로마5,11)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성령)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때에 사도들이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사도8,1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코린1,22)
"그것은 우리가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1테살1,5)


성령을 받았다는 말을 쉬운 말로 표현하면
"하느님을 체험"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체험 없이 절대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을 체험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성령을 다 알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그리고 하느님을 찾아얻었다고
다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점점 완전한 사람처럼 되어나가는 것이며, 
완전은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어 "하느님의 것"이 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부족함과 죄스러움마저도 하느님의 것이 되어
하느님이 그 사람을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엄청나게 정화시켜 주시어
점점 당신 모습에 가깝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 부활 전의 제자들은
"위로부터 태어나지"(요한3,3) 못한 상태였습니다.

주님 승천 후 오순절에야 비로서
"성령을 받게(위로부터 태어남)"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聖人이라고 다같은 성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인들의 글도 영적으로 낮은 단계에 있을 때의 글은
잘못되고 유치한 글도 있습니다.
각각 성인의 영성의 정도도 다 다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성인으로 반포했다고 해서
하느님의 기준으로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인에 대한 공경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성인공경"이 때로는
하느님께 나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moowee 11.03.21. 23:12

지금 유행하는 新영성(뉴에이지)에서 
"氣(에너지)"를 하느님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교회 내적으로도
"하느님을 氣"라고 하는 표현의 위험성과 오류성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靈"이십니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마태3,16)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8.14) 


하느님의 영은
엄청난,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 氣運을 갖고 계신 분 같습니다.
놀라자빠질 정도로 말입니다

그분의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기운 앞에
보잘 것없는 저는 저의 전 존재가 없어져야 하고
또 없어지기 위해서 그분의 기운 위에 저의 모든 걸 실어 드렸습니다.
저는 그 기운을 타고 흘러가고 있음을 느낌니다.

그 기운은 바람과 같음을 느낍니다.
바람은 잔잔합니다.
바람은 폭풍을 일으킵니다.
이리돌고 저리돌고 휘몰아치곤 잠잠합니다.


하느님의 영, 성령은 하느님의 氣運이십니다.
그 기운은 전능하고 자비롭고 거룩하고 위대하고 놀랍고
오묘하고 신기하고 희한하고 때론 웃기기도 합니다.

저는 그 기운, 하느님의 기운,
하느님의 영의 이끄심에 따라 기쁘게 살아가렵니다. ^ ^



moowee 11.06.09 07:49

세상(현세)과의 영원한 이별인 인간의 죽음은
큰 슬픔인 동시에 가장 큰 기쁨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별인 승천은 제자들의 큰 슬픔이지만
동시에 성령을 만나는 큰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은
반드시 성령을 만나서 성령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저는 성령의 다른 말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1테살4,3)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사람들이며
성령의 이끄심대로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완전한 사랑에서 발현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니케아 신경)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은
그분의 아들, 성자 예수님의 뜻과 항상 일치하셨습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요한6,38)


성부와 성자의 뜻은 똑같은 하느님의 뜻이며,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나온 성령의 뜻도 똑같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령의 역할은 사람들을 거룩히 하시는 일이며,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거룩히 되는 일이기에
'성령'의 다른 이름은 곧 '하느님의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며
그들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뜻대로 삽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8,14)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며,
거룩한 사람은 성령을 받아 성령을 입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보조자(협조자)이신 성령을 입고 사는 사람은 곧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갈라2,20)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moowee 11.11.30. 23:50

새로 태어남은 "위로부터 태어남" 이요,
"아래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은,반드시 새로이 위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육" 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 영" 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은 "영육의 합일체" 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moowee12.04.11 23:19

참으로 대단들 하십니다!
누가 하느님의 자녀들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입니다!

이제 망설이지 마세요!
여러분의 내면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충동을 따르십시오!

이미 말씀드렸듯이 망설임은 내맡김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움직임이 움직이면
그 움직임을 놓아두세요.

그 움직임이 여러분과 우리 모두를 그분께로 이끌어 주실 겁니다.



moowee12.04.14 08:28

의외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했다는,
또 하느님에 대한 전문가라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하느님께 내맡기지 못하고,
심지어는 입으로는 "하느님께 맡기라" 고 하면서
자신은 더 많은 것을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제가 그랬었기에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맡김의 영성을 전해 오면서,
지금까지 "저의 경험" 으로는 수도자들께는 "정말 쬐송한 말씀" 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던져버렸다는 수도자들이
더 내맡기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또 한가지 이상한 일은
"성령을 받았다" 분들이 더 "내맡김의 삶" 을 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상한 현상이 바로 다름아닌 "교만"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모든 신앙인에게 있어서 영적성장의 최대의 걸림돌입니다.

교만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 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깨부수지 못한다면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지식과 경험을 깨부수는 방법이 바로 "생각" 을 바꾸는 일인데,
생각을 바꾸는 일이 어디 그리 쉽겠습니까?

수십 년을 굳어온 사고가 변화하는 것은 자신이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은 하느님이 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해 주시게 하는 방법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 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을 하기 위해서는 "기도" 를 붙들고 살아야 하는데,
어디 그 일이 모든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성직자, 수도자라는 직분은 "일?" 이 너무 많은 직책이기에
오히려 기도를 붙들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이 기도하는 시간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에 5번 바치는 시간경(성무일도)과
묵주기도, 성체조배, 또는 영적독서가 거의 끝입니다.

그렇다고
그 기도들을 제대로 수행하는 성직, 수도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성직, 수도자들은 너무 "일" 이 많아서 그것이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평신도 여러분들은 성직,수도자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분들을 위한 기도는 여러분들이 하시는 화살기도에
그분들의 지향만 올리시면 됩니다



moowee12.05.16 08:05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면, 진리의 영이 찾아오십니다,
정말입니다.

"성령의 은사" 가 아니라
그 은사의 주인이신 "성령" 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찾아오신 성령께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끌어 주십니다.

그 사람은 그 이끄심에 이끌려 살게 됩니다.
따라서 내맡김은 "새로운 성령운동" 입니다.




moowee 12.05.17. 22:05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

"그분께서는" 이라는 말씀의 그분은 "성령" 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당신 스스로 말씀하시지도 않으시지만,
성령께서도 당신스스로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저는 알아듣고 이해합니다.

많은 성경주석서에 어떻게 주석들을 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성령께서도,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들으신 것만을 말씀하시듯,
성자 예수님의 협조자이신 성령께서도
"성자께로부터 들으신 것만을 말씀하신다" 는 뜻으로
저는 알아듣고 이해합니다.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는 말씀은,

성령은 예수님의 협조자로 성부께서 보내주신 분이시기에
성자 예수님께서 이루실 구원사업과
예수님이 앞으로 성령을 통해서 해 나가실 일을
성령을 통하여 알려 주실 것이라는 말씀으로 저는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에게나 알려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만 알려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무리 그 진실을 알려준다 하여도
그 사람은 영안이 멀어 전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서로의 뜻을 완전히 존중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완벽한 뜻의 조화에서 비롯된 성령!

성령께서는 성자의 협조자로서 성자의 모든 일을 성자대신 수행해 나가십니다.
성자께서 성부의 모든 일을 완벽 수행해 나가셨듯이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듯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듯대로 살기란 너무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이라 인정해 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겨 드리면 너무 쉽고,
지가 잘났다고 지 혼자서 지 뜻대로 신앙생활 하면 너무 어렵습니다.



moowee 12.08.29. 15:27

저도 "성령을 받았다" 고 난리칠 정도로 기뻐하고 좋아하던 사람들을
여럿 만나왔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그들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욕심으로, 교만으로 얼룩져 있는 모습이란,,,,,


그들이 받은 것은 성령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 를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은
"성령"과 "성령의 은사" 란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령운동본부에서는 성령과 성령의 은사를 분명히 구별하여,
"성령을 받았다"고 스스로 외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분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성령을 받았는가?" 아니면,
"성령의 은사를 받았는가?" 를 말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일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이 성령을 받은 후에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또는 더욱 나쁜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그 사람은 분명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소위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 인데,
그래서 하느님의 것이 된 사람인데
어떻게 하느님의 사람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느님의 것이 된 사람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받았던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오라는 하느님의 선물인데
그 선물을 받고 마치 성령을 받은 것처럼
그것에 만족하여 나태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성령을 찾아얻으라는 것인데
거기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본체(몸체)가 아니라 성령의 깃털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란 성령(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성령)을 소유한 사람은
부족해도 허물이 많았어도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 되어
하느님께서 절대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을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엄청나게 정화시켜주시며
마침내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한 우리 인간을 완전하신 하느님처럼 만들어 주십니다


인간이 어떻게 "완전한 인간" 으로 변화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분명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는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일로 여겼었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해 주시면 불가능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해 주시게 하는 방법이 바로,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해 드리고,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다 내맡겨 드리는 것(위탁하는 것)입니다.

맹세와 수준의 굳은 결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면(내맡김의 봉헌서약)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처럼 완전한 존재로 완성시켜주십니다.
저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내맡김의 영성" 으로!



moowee12.09.22 11:37

하느님께 내맡겨진 영혼들(100% 내맡긴)은
삶에 주어지는 모든 십자가가 곧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 영광의 도구로 변모함을 누구나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십자가가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이미 자신의 십자가에 자신의 모든 것,
<내 뜻>을 못밖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성령께 이끌려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moowee 12.10.12. 09:53

지금 마리아처럼에서 독수리 타법으로 두드리는
하덧사의 <손가락>에 마귀가 쫒겨나고 있습니다.

치유와 구마의 은사는 성령 세미나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드림>으로
치유와 구마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바친) 사람들의 손가락에는
저절로 주님의 능력이 실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이곳 마리아처럼에 숨어 있는 교만 마귀들도 곧 쫒아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거룩한 무형의 성전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moowee12.12.22 08:47

이 거룩한 무형의 성전에 들어올 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너무 우습게 여깁니다.

이 무형의 성전에 들어올 때에는
성호긋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글을 읽고 글을 올리라 하여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이 거룩한 무형의 성전에 들어가라 해도
그 말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먼 길을 돈들이며 매일미사 참례는 열심하답니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으로 여기라 해도
그 말을 우습게 여깁니다.
책을 펴놓고 손에 묵주들고 기도하는 것만을 기도로 여기는
불쌍한 영혼들 입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성전은 불타고 무너져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무형의 성전은 성령에 불타며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거룩하신 어머니를 거룩하신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moowee13.09.12 12:34

저는 정 신부님처럼 전문적으로 영성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신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하게 되면
<하느님에 대한 모든 것>은 함께 <공유>하게 되고
하느님에 대해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어(lanage)가 달라도 말(뜻)이 통합니다.

그 옛날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다른 언어로 말을 했지만,
세계 모든 나라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알아들었듯이 말입니다.


이제 <가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들의
★전 세계의 공통어★가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단, 이 공통어는
반드시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에 한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moowee14.05.03 12:53

★겨우 33년(1347-1380)이란 짧은 생애를 살았으며
평신도로서 그리고 시대 한계 조건인 여성으로서 활동한 가타리나가
어떻게 당시 유럽의 도시 국가들의 지도자들,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 뿐 아니라
사회의 온갖 부류의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일에 관여하며
영향을 미쳐 그들을 감화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녀가
★ 시대에 요청되던 특별한 카리스마 ★를 받은 ★성령의 도구★로서
그분의 이끄심에 순응★하면서 이룬 결실이 아니겠는가?>


"시대에 요청되던 특별한 카리스마" 이 말은 무~지 무지 중요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으로부터 신약 그리고 오늘날에 까지,

그 시대 시대마다 요청되는
즉, <그 시대에 따라 필요한 은사(카리스마)>
예언자나 성인들에게 선물해 주시고
사람들을 당신 가까이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은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에 맞지 않는 과거 시대의 어떤 은사가 마치도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은사인 것마냥 가르치고
그것을 통하여 짐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은사>란 하느님의 깃털과도 같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사란 그 은사를 통하여
몸통인 하느님, 성령의 도구가 되는 "디딤돌"입니다.


그 은사를 통하여(디뎌서) 하느님께 나아가
하느님과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깃털이 마치 몸통이기도 한 것처럼
깃털과 함께 부르스를 땡기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 생각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령운동★입니다.
우리 마리아처럼에도 수많은 열심한 성령운동가들이 계셨고
지금도 일부 남아 계십니다.

여러분이 만나온 성령운동가들은 어떤 분들이시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제가 만나온 성령운동가들 중에 적지 않은 분들이
<성령의 은사>에만 사로잡혀 계신 분들있었습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영적으로 교만한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린 소신학생 시절부터 수십년 보아온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시대에 요구하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의 카리스마(은사)를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인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사는 시대마다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변함 없는 당신의 뜻,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땅 위에 이룩하시기 위하여 말입니다.

하느님은 뜻은 불변★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사는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불변하는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1테살4,3)★입니다.

아무리 많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13).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과연
<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까? >

여러분께서 한 번 답을 내려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이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말입니다.



moowee16.05.28 19:07

<비록 실제로 발음은 하지 않더라도
하루 24시간 내내 그 이름은 내 마음 속에 있다.
그 이름은 나의 구세주이고 나는 항상 그 이름 위에 머물러 있다.>


아멘, 아멘, 아멘!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하내영)들이,
이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서 
하느님이 주시는 靈感★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그 영감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곧,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로마 8,14)★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


< 취침 전 기도 이불 속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 >

이 기도를 바치시고 잠이 드시면 내 몸은 잠이 들더라도
내 영혼은 깨어 주님을 찬미합니다.




moowee 16.06.06 22:21

현재 우리 교회에서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대표적인 기도회가
바로 <성령기도회>입니다.

우리 가톨릭 성령기도회의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끊임없는 기도회>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있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기도회가 점점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떤 무엇이 세상에 드러나고 알려지고> 하는 일에
그리 신경쓰지 않습니다.

<세상에 드러나고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아님말구'하면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상에 드러나고 알려져야 하느님의 소중한 많은 영혼들이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들로 변화>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맡깁니다!



moowee16.06.06 23:07

<그 뒤 중세에 프란치스칸 운동과 도미니칸 운동이 일어나
복음적 단순성과 가난의 삶을 통해 교회를 쇄신하였다. >



이제 머지 않은 날에 우리 <가톨릭교회가 쇄신>되면,
500년 전의 <프로테스탄의 종교개혁>
교회쇄신운동 ★의 하나였다고 세상에 고백할 날이 올겝니당!


<2차바티칸공의회>가 하나의 교회쇄신을 위한 회의(운동)이었고,
그 여파로 생겨난 운동 중의 하나가 <성령쇄신운동-기도회>였다는 사실을
오늘의 우리는 쉽게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2011년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 선포한 <신앙의 해>도
교회쇄신을 위한 또 하나의 시도였습니다.


<왜, 쇄신해야 합니까, 교회를?>

<쇄신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거룩한내맡김영성을 통한 끊임없는 기도 = 화살기도 운동★ 은
3천년기에 필요한 ★새로운 성령운동 ★임을!!!




moowee17.04.02 07:39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오랜세월 신앙생활을 자기 스스로 아무리 열심히하고
하느님에 대한 높은 지식을 아무리 많이 지니고 있다하여도,
<하느님께 내맡기지 않는다면> 별 소용이 없음을 눈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곳에서조차!

하느님께 내맡기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 육 안에 있는 삶 >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 정말입니다!


육 안에 사는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내맡겨야 합니다, 하느님께!

하느님께 내맡기면,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그제야 비로서 성령에 따라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사람만이 ' 하느님의 참자녀 '라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김으로
<그리스도의 영>이 그 사람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 그것이 곧 ★ 거룩한 내맡김 ★입니다.

무릎이 썩고 손에서 묵주를 떨어뜨리지 않고
온갖 거룩한 천상적 언어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그분처럼 내맡기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평생 X고생입니다

아버지, 맡깁니다, 그들을!



moowee17.04.03 17:44

[궁금해요]

<39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 구절에의 말씀의 의미?


하하하하
당근 아닙니까, 말밥이?

◎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시려면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성부의 뜻을 다 이루셔야 영광스럽게 되시지 않습니까?
성부의 뜻이 뭡니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한 인류구원 아닙니까?
이때는 바로 그일이 이루어지기 전이니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신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 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언제 당신의 협조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부의 뜻을 다 이루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 19, 30), >

부활 후 오순절에야 성령을 보내주지 않으셨나요?
그러니 당근 <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이 아닙니까?



moowee 17.09.27. 22:06

<*우리 안에 하느님이 사시게 된 것*은
우리가 특별한 업적을 세우거나 의식儀式을 행해서가 아니다. >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어떤 특별한 업적이나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벙법은
오직,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뜨거운 열망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는 것 ★이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하느님의 때*가 되면,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체험★이다, ★성령을 받은 것이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의 내재하심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로마 8,9; 갈라3,1-5 )

성령을 여러 교리 가운데 하나로 '믿으려'하지 말라.
그 대신 * 당신 안에 있는 깊은 샘물을 길어 올려라. *
그러면 저절로 믿어질 것이다.>


거룩한 내맡김의 끊임없는 화살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샘물인 성령을 길어 올리는 일이다!



moowee 18.02.21 08:35

깨달음? 아버지께 내맡기면 한 방입니다,
한 방! 한 방?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드님과
그분들의 한 靈이신 성령과 같은 집같은 방, 한 방
머무를 수 있습니다,

엉원히, 아주 영~~~원히, 땅에 발을 밟고 사는 지금 여기부터!
사랑하는 아버지,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당신의 젖먹이 철부지 똥싸개들로부터!




이해욱프란치스코위무위65 2020.02.19. 00:37

송 신부님을 통한
아버지의 이끄심의 결론은 <새로운 성령운동>입니다!

성령쇄신운동의 지도자들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새로운 성령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 결론입니다.

지난 해에 이곳에 올려드렸던 강의,
前 세계성령쇄신협의회 <미쉘 모란>님의 강의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50년 역사의 성령기도회가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은사주의>에서!!!

성령의 은사가 은사로써 끝나서는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은사를 통하여 <성령께 모든 것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맡겨드려야 합니다!








토마스 머튼쉬어 가세요 / 무종교인의 재미있는 철학 이야기

위무위추천 0조회 88820.04.04 15:45댓글 99



[Re:하느님섭리에내맡김《서론》


 **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

루이스-프랑소와 드 로산(Louise-Françoise de Rosen) 수녀님에게 보낸 편지(1735).



한 훌륭한 영성 작가는 
이를 ‘일하지도 않고 일에 전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과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되어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배려(happy disposition),

거룩한 여가(holy leisure),

거룩한 무위(無爲; holy idleness)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