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

11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80-88) - 에고의 악마성

은가루리나 2020. 7. 3. 22:42

 

◇ 인간, 그리고 이 세상

4. 에고와 이기주의로서의 마야


□ 에고의 악마성 (pp24-25)



80. 태양은 이세상에 빛과 열을 준다.
그러나 구름이 그 빛을 가리면 태양은 더이상 빛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에고가 심장을 가리는 동안은 
신은 네 영혼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없다.


81. 에고는 신이라는 태양을 가리는 구름과 같다.
이 에고의 구름이 스승의 자비에 의해서 제거되면 
신은 그의 모든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82. [문] 우리는 왜 속박 속에서 살고 있는가?
왜 신을 보지 못하는가?

[답] 인간의 에고, 그 자체가 바로 마야다.
이 마야가 신의 빛을 가린다.


< 내>가 죽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신의 은총에 의해서 
「......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라는 예지를 얻은 사람은 
이 삶 속에서 오히려 자유롭게 된다.
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83. 이 옷으로 나를 가리면 너는 더이상 나를 볼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여전히 네 옆에 있다. 

신은 너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러나 에고라는 이 보자기가 너를 가렸기 때문에 
너는 신을 볼 수 없는 것이다.


84. 에고가 버티고 있는 동안은 영혼의 각성도 해탈도 불가능하다.
여기 탄생과 죽음의 악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85. 빗물은 높은 곳에 머물지 않고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신의 자비는 겸허한 사람들의 가슴에 머문다.
그러나 허영심과 자부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넘쳐서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86. 에고가 뿌리뽑히지 않는 한 인간은 구제받을 수 없다.

송아지를 보라.
그의 모든 문제점은 에고로부터 시작된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움메(Ham hai, 나는 .....이다)하고 운다.

에고의 결과는 그가 다 자랐을 때 온다.
숫소라면 쟁기로 밭을 갈든가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
암소의 경우 도살장으로 끌려가 도끼로 최후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심판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짐승은 그의 에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의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치면 
거기 그의 숨어 있는 에고가 소리친다.

「둥」(Ham, 나다).

이 불쌍한 짐승은 그의 내장을 꺼내어 활시위를 만들 때까지는 
겸손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의 내장으로 활시위를 만들게 되면
그 후에야 이 불쌍한 짐승의 창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딩」(Tu hai, 당신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당신>에게 나의 자리를 양보하고 만다.
이는 영적인 자각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성취할 수 없는 경지다.


87. 그대의 <나(에고)>가 사라져 버리고 
그대 자신이 신 속에 흡수될 때에 거기 진정한 자유가 있다.

 


88. [문] 언제 나는 자유롭게 될 것인가.

[답] 너로부터 <나>라는 이 에고가 사라질 때이다.

나, 내것------이것은 무지다.
당신, 당신의 것-----이것은 지혜다.


진정한 구도자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신이여, 당신은 내 생명의 주인입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입니다.

나는 당신 손에 쥐어진 한낱 악기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시키는 것이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영광입니다.

이 집이며 이 가족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입니다.

나에게는 오직 당신의 명령에 따를 의무만이 있을 뿐입니다."

 

 

 

 

 

 

moowee 16.09.02. 15:30


에고

 에고

 나(둥, Ham) 죽겠다




 신부 때문에 

신경질나(我) 나(Ego) 죽겠다, 

에고

 에고

 에 고(go)고(go)고(go)



 나가자

 나가뻔지자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면,
반드시 나(에고)를 죽여야 합니다, 내(我) 뜻을



에고(자존심)를 죽이지 않고서는 

때로 나의 주인이신 주인님, 참아버지를 만날 수 없습니당




이곳에 머무르는 한,

무위신부의 영적지도에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나를 죽이는 지름길입니당

 

 

 

* * *

 

 

 

╋ 보조교사방
에고~ 에고~~ 아이고 죽겠다 에고~~~
이해욱프란치스코 15.11.12 21:26


"Ego"에 대하여


흔히들 하는 말로
"아, 정말 자존심이 콱 상해버렸어!"
"나는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 말은 절대로 못 받아들여!" 등을 사용합니다.

저는 "自尊心" "自愛心"이라고도 표현해 왔습니다.
또는 "Ego"라고도 사용해 왔습니다.

저는 그 말들 자존심, 자애심, Ego 등이
심리학적으로 정확히 같은 의미의 말들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같은 의미로 사용하여도 그리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Ego에 대하여 말해보겠습니다.
우리의 내면 안에 각자가 지니고 있는 Ego는 다 같은 Ego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Ego는 어린 시절 외부로부터 크게 상처를 받아
정상적이고 건강한 Ego가 아니라 
잘못된 모습으로 변형된 Ego도 있을 것이고,
상처를 받은 시기와 종류와 충격의 강도에 따라 다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5년이 넘게 영적지도를 해 오면서
저로부터 잘못을 지적받게 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 카페를 탈퇴하든가 아니면
탈퇴를 하지 않더라도 
그저 방문만 하고 댓글에 아예 손을 떼든가 하게 됩니다.



저의 영적지도는 
이냐시오 성인처럼 정해진 어떤 윈칙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적 성장의 정도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그 정도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벼운 한 마디로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놀라자빠질 정도의 벼락을 칩니다.
영적지도로 매 번 그 사람의 신앙의 정도가 잘 드러남을 경험해왔습니다.


저는 영적지도에 대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영적식별에 대한 책도 조금 읽다가 중단하였습니다.

지리산에 있을 때 
어떤 회원에게 부탁드려 저 스스로 그 책을 청하여 선물로 받았음에도 
읽어나가다가 읽기가 싫어져 책을 닫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 책을 무시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너무 복잡하여 제 수준으로는,,,,


한 마디로 저는 영적지도에 대한 가방 끈이 짧은 것이 아니라
아예 가방 끈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님이시고 스승님께서
사람 사람마다 상황 상황마다 지혜를 주시어 다 이끌어주십니다.

영적지도를 받을 때,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Ego가 아프기도 하지만
자신의 영적성장을 위하여 감사히 받아들인 사람은 
분명 영적성장을 이룹니다.

저의 영적지도에 상처를 크게 받고 카페를 자퇴한 사람도
그 사람이 영적성장을 이루면 
분명 저로부터 받은 상처를 감사히 여길 것입니다.

제가 만난 하느님이나 그분이 만난 하느님은 다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과거에 밝혔듯이 그분이 나중에 저보다 큰 영적성장을 이루시면
저는 정말 기꺼이 그분께 영적지도를 청할 것입니다.


저의 영적지도의 규정이나 원칙이나 기준은 단 하나,
그것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입니다.

그분의 뜻을 알아듣기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람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뜻을 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만 정말 죽도록 사랑하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느님을 죽도록 사랑하십니까?
그분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목숨"을 그분께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여러분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여러분의 "자녀"를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여러분의 자녀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돈"을 전부 다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선 사람은 "진실로 하느님을 사람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영적지도자인 저의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떤 영적지도에도 기꺼이 순명합니다.
저의 영적지도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자신을 높이기보다 하느님을 높여 드리기 위해 자신을 바닥에 깝니다.
그래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이미 그 사람의 '자아(Ego)'가 하느님의 차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自尊心'의 중심을 차지하고 계신 분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自愛心'은 어느덧 自己愛가 아니라
자신을 차지하신 그분에 대한 '尊重과 사랑'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자기(Ego) 이부자리를 깝니다.
자기를 위하여 이부자리를 깔지 않습니다.
자신이 낮은 자리에 자리합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자신을 위하여 이부자리를 까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소위 '자애심'이 큰 사람입니다.
소위 '자존심'이 센 사람입니다.
소위 'Ego'가 강한 사람입니다.

Ego가 강한 사람은,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애심이 큰 사람은 삐뚤어진, 이그러진, 상처난, 병든 영혼입니다.

자신의 삐뚤어진, 이그러진, 상처난, 병든 영혼을 몰라보게 하는 놈이
그 영혼에 검은 휘장을 씌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Ego가 그런 Ego(자존심, 자애심)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여러분의 'Ego'는 이미 부서져버렸습니다.
여러분의 '自尊心'은 이미 헤어져버렸습니다.
여러분의 '自愛心'은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으로!

그럼으로 내가 주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분께서 주인이 되셨습니다,
나(Ego, 자존심, 자애심)의 거룩한 바침(내맡김)으로!


에고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거룩히 내맡겨드리면
망가지고 찌그러지고 상처로 얼룩진 에고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됩니다,
참으로 말입니다, 
에고의 참주인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