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

21 {천상의 책 4권113장}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만이 다시 나타나게 할 작정이다..그러니 으뜸가는 일은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일

은가루리나 2020. 9. 22. 16:51

 

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4-113


1902년 3월 3일


으뜸가는 일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었으나
오늘 아침에는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

그분의 이 부재로 말미암아 나는 죽을 것만 같았다.

기다림의 한계에 이르렀을 무렵
측은한 마음이 드신 그분께서 비로소 오셨는데,
나를 나무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때로는 내가 오지 않을 필요가 있다.
늘 온다면 내 정의를 어떻게 밖으로 드러내겠느냐?

게다가
인간은 내가 책벌하지 않는 것을 보면
갈수록 더 교만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 전쟁과 파괴가 필요한 것이다.
그 시작이나 과정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끝은 대단히 즐거운 것이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러니 너는 알아야 한다.
으뜸가는 일은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일이라는 것을."




2-84,10
"그러니 내가 징벌을 내릴 때면
너의 탄식과 고통으로 나를 동반하면서
징벌이 사람들의 회개를 위한 것이 되도록 기도하여라."



12-26,12
"오,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아름다움이여!

내가 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앞으로 올 세대에는 어떤 외관을 한 덕행이건
다른 모든 성덕들은 사라지게하고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만이
다시 나타나게 할 작정이다.

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인간적인 성덕이 아니고 신적인 성덕인 까닭이다.

13 그들의 성덕이 얼마나 태양같이 고결한지
과거 세대 성인들의 성덕 중에서
가장 훌륭한 별들도 무색하게 될 정도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땅을 정화하려고 한다.
현재의 땅은 이토록 놀라운 성덕에 맞갖지 않기 때문이다."




* * *



6-24 1904년 3월 5일
십자가는 영원한 나라를 소유하게 하는
소환장이자 변호자이며 재판관이다



2 "딸아,
고통 곧 십자가들은 그 수만큼 내가 영혼들에게 보내는 소환장이다.

그것이
갚아야 할 빚을 통지하는 소환장이건,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어떤 보물을 받으러 오라는 소환장이건,
영혼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다시 말해서
나의 뜻에 자기를 맡기며 응답하고
내게 감사하며 내 거룩한 안배를 받든다면,
우리는 즉각 합의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영혼은 귀찮은 일들을 그만큼 많이 모면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소환장이 거듭 발부된다든지,
변호사를 고용하고 사건을 공판에 회부하며
재판관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3 무엇을 위해서건
그저 맡김과 감사로 그 소환에 응하는 것만으로 넉넉하다.

십자가가 곧 소환장이자 변호자이며 재판관이니,
(하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요구조건도 없다.

영혼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얼마나 많은 실총(失寵)의 구렁텅이와 근심 걱정을 치르게 될 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십자가를 회피한 데 대해서 재판관이 얼마나 엄하게 단죄하겠느냐?

십자가가
그보다는 월등 더 관대하며 동정심이 많은 재판관이고,
영혼을 심판하는 대신 더 풍요롭게 해주고
단죄하는 대신 더 아름답게 꾸며 주고자 하는 재판관이다.“



2-81 1899년 10월 7일
사람들에 대해 노여워하시는 예수님

6 나는 사람의 의지를 원하는 왕이다.
썩어 악취가 나는 것들을, 곧
그들의 죄를 그들 스스로 말끔히 치워 버려야 내가 들어갈 수 있고,
그들과 화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데)
거기에 들어가는 것은 나의 왕다운 품위에 걸맞지 않으니,
징벌을 내릴 수밖에 없다.

환난의 불길이 도처를 휩쓸며 그들을 찍어누르면
그제야 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기억하고,
하느님만이 자기네를 도울 수 있고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3-62 1900년 4월 21일
"십자가는 성체성사 이상으로 영혼 안에 하느님을 날인한다."

2 "그 사람들은 거룩한 그릇이다. 그러나 이따금 먼지를 털어 줄 필요가 있다.
너희들의 육신도 내가 그 안에 머무르는, 같은 수의 거룩한 그릇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따금 이 그릇들의 먼지를 털어 주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내가 어떤 시련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한층 더 존엄하게 그들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3-96 1900년 7월 16일
온 존재가 예수님의 뜻에 묶이다.


3 "나는 노여움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네가 만일 발가벗은 사람을 본다면,
그런데 이 사람이 벌거숭이의 몸을 가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보석으로 치장한 채 돌아다닌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5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도
아무런 덕행의 옷을 입지 않은 영혼들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 안으로 한 번 더 들어가서
자기네 영혼의 헐벗음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그들을 치고 매로 때리며 곤궁을 겪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덕행과 은총으로 옷 입히는 것은
몸에 옷을 걸치게 하는 것보다도 더 긴요한 일이다.

그들이 영혼을 흉하게 망가뜨려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는데도
내가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간주한 사람처럼)
몸에 달 장신구나 염두에 두는 격이 될 것이고,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인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는 셈이 될 것이다."



4-98 1901년 12월 29일
예수님의 그늘 아래 사는 이들에게 환난이 꼭 필요한 까닭


2 "딸아, 내 그늘 아래 사는 사람들 주위에는
반드시 환난이라는 바람이 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건강에 해로운 공기가 내 그늘 속으로 침투할 수 없다.

끊임없이 불어대는 이 바람은 해로운 공기를 흔들어 몰아내고
사람으로 하여금 깨끗하고 건강에 좋은 공기를 마시게 하는 것이다."



4-115 1902년 3월 6일
예수님께서 맨몸으로 오신 뜻


1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오시어,
내 안에서 걸칠 거리를 찾고 계셨다.

2 "딸아, 그들은 내게서 모든 수위권과 통치권과 주권을 앗아 갔다.
그러니 인간에 대한 나의 권리를 회복하려면
내가 그들을 헐벗게 하고 실제로 멸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하느님이 시작이고 통치권자이며 주권자가 아닌 모든 곳에서는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그들로 하여금 자멸에,
따라서 온갖 악의 근원에 이르게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18-7 1925년 10월 17일
영혼을 나쁜 성향에서 지키는 보호 수단


12 "어떤 방식으로나 구멍을 내어 나쁜 것이 빠져나가게 하는 처방은
언제나 유익하다.
그것이 피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마음의 파수꾼이다.
이는 곧 올곧은 영혼의 지향이요, 이 지향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다.

13 그러니 모든 이가 오직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선을 행한다면
침을 찌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뜻이 모든 나쁜 성향에서 지켜 주는 보호 수단이기 때문이다.

침은 따라서 내 뜻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책벌(責罰)이 되기도 한다.“



18-21,18
내 뜻은 결코 인간을 떠나지 않는다.
내 뜻이 떠난다면, 인간은 분해되어 무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내 뜻에 자기를 내주지 않아
내 뜻이 그를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면,
그럴 때에는 적어도 그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20-50,19
"나는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너 자신을 내게 맡겨라.
너의 예수가 모든 일을 다 해 주겠다."




* * *



제 1 편 제 8장 위탁(委託)에 있어서의 노력(努力) ①

천주께서는 최상의 주권자로서
그 손으로서 우리의 아무런 동의없이,
그리고 가끔 우리의 기호나 기대에 거스르시면서까지도
스스로 우리를 위하여 택하시는 경우,

즉 건강 또는 질병, 내적 위안 또는 시련,
평화 또는 싸움, 정온 또는 동요등 안에 우리를 두신다




* * *



「수난의 시간들」제15시간

고통과 업신여김 및 우리의 가련한 마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 속에서
우리는 이를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길과 함께 주시는 고통이라고,
즉, 예수님께서 당신 손길로 우리를 만지시어
당신 자신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이라고 여기는가?

그 뒤에 고통이 다시 찾아올 때에는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아직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또 하나의 고통으로 우리를 주조하여
당신과 완전히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여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