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11 pp.557-561 제 4 편 제1장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 ③

은가루리나 2021. 7. 25.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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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과 효과


제1장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 ①②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 ①②
 제2절 단순과 자유 ①②
 제3절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온
 제4절 평화와 희열 ①②③
 제5절 거룩한 임종과 천주의 어전에 있어서의 힘 ①②

결론 ①②③

 역자 후기

 

 

4 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優越性)과 효과(效果)

제 1 장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 ③



p.557

이렇게 하여,
거룩한 위탁의 실행에는 하나의 발랄한 신앙,
이미 견고한 신뢰심이 전제로 돼 있다.

위탁의 실천은 이런 덕을 놀랄만큼 발전시켜,
최고도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것은 신애(神愛)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거룩한 위탁은 우선,
완전한 이탈에 의해서 신애에 놀랄 정도의 성장을 부여한다.


성「알퐁소」는 말했다.

「마음이 지상의 사물에 충만돼 있을 때에는,
신애는 거기에 점유할 장소를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지상의 사물이 마음에 남아 있는 정도에 응하여
신애가 마음을 지배하는 일이 적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온통 소유하시기 바라시고,
거기에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결국 신애는
우리에게서 지상의 모든 사물을 박탈하시려는 사랑스러운 도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

「모든 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어라!」고 「토마스.아.켐삐스」도 말했다.
(성 알퐁소「거룩한 반성」4, 13, 19절, 「신애」3절의 1)


이처럼 필요한, 이처럼 힘이 드는 이 완전한 이탈은,
겸손과 순명과 자아포기가 이미 이에 착수하고,
벌써 얼마쯤 전진시켰다.
더욱 이런 덕은 어디까지나 이 이탈을 추구하여 그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미 말한 것 같이,
이탈이 완벽에 이르기에는
거룩한 위탁의 활동의 원조를 필요로 한다.

이렇게 하여 영혼이 공허로 되는 것을 완성하는 것은 위탁이다.

영혼이 공허하게 되면, 신애가 돌입하고,
이미 거기에 아무런 장해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그것을 채우고 다스리며, 변화시켜 거기서 왕과 같이 군림한다.

p.558

거룩한 위탁은 단지 신애에의 길을 준비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가장 완전한 애덕의 행위,
영혼이 천주께 대해서 나타낼 수 있는 최상의 업이며,
천번의 단식이나 편태보다도 훨씬 값진 것이다.

왜냐 하면,
애긍시사에 의해서, 자신의 재산을
편태에 의해서, 자기의 피를
단식에 의해서 자신의 양식을 주는 이는,
그 소유의 일부분을 주는데 불과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천주께 바치는 이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모든 것을 주는 이며,
따라서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여, 나는 가난한 이오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나이다.
주여, 내 의지를 바쳤아오니,
나에게는 이미 당신께 바칠 아무 것도 없나이다』라고.」

성「알퐁소」의 말이다.
(「신애」3절.3,「적합」1절,「거룩한 반성」19)


거룩한 위탁은 또한 지극히 순결한 사심(私心)이 없는 사랑이다.
빵을 떼실 때까지 기꺼이 예수와 함께 있는 영혼은 많지만,
「갈바리아」의 희생에까지 주를 따르는 이는 극히 드물다.

감미, 열정, 황홀 안에 있어 천주를 사랑하는 것은 쉽다.

자신을 잊고,
자기를 온전히 천주께 바치며
천주의 만족하심을 자기의 만족으로 삼고,
못박히신 예수의 발자취에 데려가려 하실 적에도
그 거룩한 의지를 자기 의지로 삼는 것은
보다 훌륭한 일이다.


「삐니」신부는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가장 완전한, 가장 순수한 사랑의 태도다.

천주를 위하여 바치려고 결심하고 있는 희생의 크기에 의해서
신애의 정도를 측량할 수 있다면,

천주의 뜻에 단지 지상의 재보, 명예, 건강, 생명 뿐 아니라,
영혼의 내부의 것, 영원에 관해서도 맡겨 드리며,
그런 모든 것 안에
천주의 정하심과 의지 밖에 바라지 않는 영혼의 사랑보다
더욱 순수한 커다란 사랑이 또 있겠는가.


자신을 희생의 상태에 두고
순간마다 천주께서 자신을 죽이시는 것을 공손하게 수락하고
자기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끊임없는 제물이 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야말로
사욕(私慾)의 정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겠는가.」 (지상의 천국 9장)

p.559

거룩한 위탁을 실행함으로써,
영혼은 동시에 모든 덕에 최선의 방법으로 함양돼 간다고
덧붙일 수 있으리라.

왜냐 하면, 영혼은
한 걸음마다 혹은 겸손, 혹은 순명, 혹은 인내, 혹은 청빈 등을
실행할 기회를 만나게 되며,
그리고 거룩한 위탁은
그 어느 것이나 최고의 완전성에 까지 높이기 때문이다.

「삐니」신부는 이것을 풍부히 예증(例證)하고 있다.
길어지므로, 직접 그의 귀중한 저술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에는 다만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함에 그친다.

「위탁은 덕 중의 덕이다.
그것은 애덕의 『크림』이며,
겸손의 향기임과 아울러 인내의 보수, 견인의 열매다.
그것은 참으로 위대한 덕,
오직 천주의 총아(寵兒)만이 실행하는데 맞갖는 덕이다.」(「대화편」2)



그러나 위탁이 모든 덕을 완성한다면,
그것은 또한 영혼의 천주와의 일치도 완성한다.

지상에 있어서의 이 일치란
신앙에 의한 정신의 일치,
사랑에 의한 마음의 일치,
특히 천주의 의지에의 적합에 의한 의지의 일치를 가르친다.

이 일치는 우선 순명에 의해서 시작되고,
또한 끊임없이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위탁이다.

실제 사람은
천주께서 하시는대로 맡기며,
그 하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관하여 뜻대로 행하시는 파괴를
사랑의 마음으로써 수락하는 것보다,
더욱 완전히 천주께 일치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천주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바라고,
그 원하시는 것만을 원하며,
더구나 그 바라시는대로 바란다는 것이다.

p.560

따라서 이것은
천주의 의지와 완전히 합치하는 것이며,
천주의 의지에 동화(同化)하고 융합하며,
천주 안에 있어서의 가장 심오한 모든 것,
즉 그 마음에 그 뜻에 그 측량하기 어려운 결정에
비록 우리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드라도,
「항상 공평하시고 공의하신 그 판정에 가장 깊이 일치하는 것이다.」

이보다 견고하고, 분리하기 어려운 일치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참으로 이 길에 있어,
이 영혼을 천주에게서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이랴.
굶주림이냐, 박해냐, 삶이냐 죽음이냐, 아니다,
그 밖에 어떤 일도 그렇지 않다.

이것은 천주의 의지 밖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그것을 모든 것에 있어 따지지 않고 받아 들이기 때문에,
오직 성의가 성취되는 것을 보고
언제나 자신에게 닥칠 모든 일 안에,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지상의 천국」3장)



그런데, 무엇보다도 거룩한 위탁을 장려하는 까닭은
위탁처럼 잘 우리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일치시키는 것은 또 없으며,
더구나 이 천주의 의지는 모든 완전함의 규범이고 척도이며,

따라서
우리의 의지가 천주의 의지에 적합하는 것으로만
완전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흠숭하올 천주의 의지와의 적합이 진보됨에 따라,
그 만큼 우리는 덕이 높고 거룩한 이가 된다.

아니, 오히려 만사에 있어 천주의 손과 뜻만을 보는 이,
이 거룩한 의지 외에 어떤 기준도 가지지 않는 이는 이미 성인이며,
완덕에 도달한 이다.


그리고
이 영역에 도달한 이가 더욱 거룩하고 더욱 완전한 이가 되기 위해서는
그 위에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그것은
우리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항상 보다 잘 적합시키는 것,
성「알퐁소」의 힘 있는 말로써 한다면,

두 의지를 말하자면 하나로 하고,
천주께서 바라시는 것만 바라고,
천주의 의지만이 남아 있고
우리의 의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정도까지,
천주의 의지와 일치하는 것이다.

거기에 완덕의 극치가 있으며,
우리는 쉬지 않고 그것을 갈망해야 한다.

성모 마리아가 모든 성인 중에서 가장 거룩한 분이신 것은
언제나 가장 완전히 천주의 의지와 일치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적합」1절, 「예수.그리스도에의 사랑」9.1, 「제요(提要)」9)

p.561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내적 생활의 절정에 오르기 바란다면,
걸어야 할 최선의 길은 거룩한 위탁의 길이다.
다른 어떤 길도 그처럼 빨리,
또한 그토록 높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그러나 결코
겸손, 순명, 자아포기의 덕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이런 기초적인 덕은,
묵상과 아울러 언제나 필요한 그리고 확실한 길이다.

이 길에 의하지 않는다면,
견고한 덕과 위탁을 헛되이 찾아 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마지막 날까지 우리는 충실히 이 길을 걷자.

그러나 우리가 이 길에 의해서
사랑과 효심(孝心)에 충만한 완전한 적합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성덕에의 길을 찾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