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12 pp.562-561 제 4 편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①

은가루리나 2021. 8. 2. 01:39

 

 

★거룩한위탁
제4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과 효과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親密)(1)

옴니아 추천 1 조회 95 14.02.26 20:59


제4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과 효과


제1장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 ①②③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 ①
 제2절 단순과 자유 ①②
 제3절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온
 제4절 평화와 희열 ①②③
 제5절 거룩한 임종과 천주의 어전에 있어서의 힘 ①②

결론 ①②③

 역자 후기




제 4 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優越性)과 효과(效果)

제 2 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 1 절 천주와의 친밀(親密) ①


p.562

위탁이 가져오는 첫째 효과,
맛이 좋고, 영양분이 풍부한 최초의 열매는
겸손에 충만된 신뢰에 있어서의 천주와의 감미로운 친밀이다.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천주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며, 선(善) 자체가 아니신가.
그 헌신, 그 자애에 있어,
지상의 누구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비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천주는 그치지 않는 사랑의 샘,
우리의 사랑이 거기에서 나누이어,
우리 안에 흘러오는 사랑의 원천이시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는
당신의 무한한 기쁨의 대상이신 지극히 사랑하시는 성자까지도 
넘겨 주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음을 생각할 때,
천주 성부께서 인류를 사랑하심은 그저 놀랄 뿐 이며,
사람이 되신 말씀은 자신의 생명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구원자, 벗, 정배가 아니신가.
그 헌신적인 양순한, 자비에 충만한,
인내 깊고 벌하심에 더디며, 용서하시는데 신속하신 
성심(聖心)에 비할 수 있는 다른 마음이 있겠는가.


우리 모든 이의 맏형이신 그의 겸손은 감탄스러운 것이며,
또한 그는 지상의 자기 가난한 형제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다.

드디어 성성자(成聖者)이신 성신은,
요람 안의 유아에게 기울이는 어머니보다
더욱 깊은 사랑과 배려로써
하루에 천번이라도 도우시기 위하여 달려 오시고
밤낮 우리 영혼을 극진히 돌보고 계시지 않으신가.

그렇다, 참으로 「천주는 사랑이시다.」(요안1서 4.16)
그 자녀들과 함께 계실 때,
천주께서는 기꺼이 그 엄위하심과 우리의 비천함을 잊으시고,
아버지로서의 인자하신 태도만을 보이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미소한 이들과 함께, 온전히 미소한 이가 되신다.

p.563

성「벨나도」가
천주와 어떤 영혼과의 감미로운 친밀에 관해서 말할 때,
그 붓은 멈출줄 모른다.

「지극히 사랑하올 분이 방문하실 때,
거기에는 이미 스승으로서의 위엄도, 왕으로서의 존엄도 없으며,
엄위하심은 잃어지고, 두려움은 사랑 앞에 굴복한다.

전에 『모이세』가 벗과 같이 주께 말하고
주께서 이에 응답하신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로 말씀과 이 영혼 사이에는,
같은 집안에 사는 두 사람 사이에서 보는 것과 같은
친밀한 대화가 오간다.

그것이 이상하겠는가.
그들의 사랑은 같은 샘에서의 것이므로 서로 사랑하며, 애무한다.
꿀보다 달콤한 말이 두 마음에서 교대로 흘러나오며,
상호의 애정의 표시인 무한히 감미로운 사랑의 시선이 오간다.」


이 관용하신 천주의 부드러우심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이다.

「천주께서도 또한 사랑하신다.
천주의 사랑은 남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이 사랑의 원천이시다.

천주는 다만 사랑을 소유하실 뿐 아니고, 사랑 그 자체시므로 
보다 강한 사랑으로써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 사랑하시는 이를 종으로서가 아니고 벗으로서 대하신다.

보라, 그 엄위까지도 어떻게 사랑 앞에서는 힘이 없는 것인지를.
왜냐 하면,
누구도 자기 위에, 또는 자기 밑에 보지 않는다는 것이 사랑의 특징이며,
사랑은 위대한 이도 미천한 이도 모두 
이를 마찬가지로 여기며 동일한 것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랑의 대담함은 어디에서 영혼에 오는 것일까.

「영혼은 천주를 사랑한다는 것,
더구나 열렬한 사랑으로써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도 역시 깊이 천주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유일한 노력은 끊임없이 마음을 다하여,
천주의 거룩한 마음에 알맞는 수단을 찾아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p.564
영혼은 스스로 열성과 노력을 다한다면,
천주께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하실 것을 확신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그대가 측량한 것으로써 그대도 역시 측량될 것이다』라는
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지극히 사랑하올 분이 더욱 깊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자기 안에서 경험함으로써
천주께서 얼마나 사랑하신다는 것을 통찰한다.
즉 영혼이 천주를 사랑한다면,
천주께서도 또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참으로 그렇다,
천주의 사랑을 영혼 안에 생기도록 하는 것은
영혼에 대한 천주의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데, 거룩한 박사는 결론한다.

「그대들이 만일 천주를 사랑한다면,
천주께서도 또한 확실히 그대들을 사랑하시고
당신에게 관해서만 전심하는 것을 보실때,
천주께서도 또한 그대들에 관해서 배려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그대들이 이런 일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천주보다 먼저 또는 천주 이상으로 자신에게 돌린다면,
그것은 무모한 짓이다.

천주께서는 그대들을 그대들에 앞서 사랑하신다.

이런 것을 알아 영혼이 스스로 다른 모든 것을 망각하고,
오직 홀로 천주를 위하여 정성껏 끊임없이 근신하며, 유념할 때,
지극히 엄위하신 천주께서 마치 
다른 피조물이 없는 것처럼 자기에게만 깊이 배려하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리라.」
(「아가에 관한 설교」45.1, 49.1, 2-69.7,8등)

p.565

그러나 이 감미로운 친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동상 83.3)
그것은 천주께 대하여 순종하는 영혼을 위한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느니라」(잠언8.17)고
천주이신 예지는 말씀하셨다.

천주를 사랑하자.
그러면 천주께서도 확실히 우리를 사랑하시리라.
깊이 사랑하자.
그러면 우리는 무한히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있다.

그런데, 참된 사랑이란, 자신을 주는 사랑, 
특히 완전한 순명과 효애에 충만된 위탁에 의해서 증명되는 사랑이 
아니겠는가.

주께서는 명백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 만일 나를 사랑하면 내말을 준행할 것이니,
성부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또 우리등이 저에게 와 한가지로 거처하리로다.」(요왕14.23)

또한
「대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성부의 뜻을 준행하는 자는
곧 내 형제이요, 내 자매요, 내 모친이니라.」(마태오 12.50)


실제, 순명과 위탁은
죽을 때까지 더구나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명하신 분에게
우리를 닮게 한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 마리아는,
다만 주를 잉태하셨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천주의 말씀을 듣고, 이를 행하셨기 때문에
가장 잘 주를 닮으시고, 그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 되셨다.
(루까11, 27, 2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