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15 pp.574-578 제 4 편 제2장 제3절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온

은가루리나 2021. 8. 23. 00:20

 

 

옴니아 추천 0 조회 181 14.03.26 23:31


제4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과 효과


제1장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 ①②③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 ①②
 제2절 단순과 자유
 제3절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온
 제4절 평화와 희열 ①②③
 제5절 거룩한 임종과 천주의 어전에 있어서의 힘 ①②

결론 ①②③

  역자 후기




제 4 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優越性)과 효과(效果)

제 2 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 3 절 정신의 안정(安定)과 마음의 평온(平穩)


p.574

정신의 불안정과 의지의 동요는 세상에 충만하고 있는데,
더구나 그것은 세속의 수치와 고뇌를 이루는 것이다.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는 이 불행의 근원을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정욕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라는
하나의 점에 귀착시키고 있다.

그들은 어떤 곤란, 반대, 고통에도 부딪치지 않으려고 고심한다.그렇지만, 변전무상함은 세상의 버릇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소망대로 성공했다 하여 기뻐하고,
얼마 후 뜻하지 않은 사소한 반대에 부딪쳐 슬퍼한다.

오늘 묵상에 있어 받은 위로에 격려되어 천주를 섬기려고 결심한 이도,
내일 무감각에 빠진다면, 즉시 실망, 낙심한다.

현재 어떤 일을 열렬히 바라는가 하면 곧 다른 일이 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그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러나 내일은 견딜 수 없을만큼 싫증을 느끼리라.

눈에 새롭고, 또한 순조롭게 되므로, 무슨 선업에 열중하여 분발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반대, 실패, 단조로움이 시작하자 즉시 좌절한다.


본성의 경향, 정욕, 애정에 맡겨 행동하는 이에게
이런 일이 야기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만일신앙과 이성이 우리 안에 있는 이런 것을 다스리고, 이끌지 않는다면,「혹은 열심을 북돋우는가 하면, 즉시 냉담, 태만에 떨어지는끊임없는 변천, 불안정, 변화, 동요, 기괴한 행동 외에대체 무엇이 있겠는가.1시간쯤은 정숙을 간직하리라.그러나 곧 이틀이나 불안에 괴롭힌다.」
p.575

또한 경애하는 성인 박사는 계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위로가 없을 때에는 슬픔, 
위로가 찾아들면 기뻐 노래하는 자를 흉내내는 것을 멈추자.
그들은 마치 흐린 날에는 울쌍이 되고,
해가 뜨면, 온 종일 뛰어다니는 원숭이와도 같지 않은가 」
(「대화편」3,7) 라고.


성「알퐁소」도 그들을 바람개비에 비유하고 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조금도 침착함이 없으며,
간단 없이 세상의 바람에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순경에 있을 적에는 평온하고 기쁜 빛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역경을 만나면 인내함이 없이, 곧 비탄에 잠긴다.
그들은 결코 완덕에 도달할 수가 없고, 
언제까지나 가련한 생활을 보낸다.」(「예수.그리스도에의 사랑」9.1) 



그러나 영혼이 거룩한 무관심과 위탁에 진보함에 따라,
모든 사물에서 이탈하고, 그 구하는 바는 천주 뿐이 된다.

영혼은 하늘에 계신 성부께,
모든 것에 관해서 완전한 신뢰를 바치며
신속하고, 충실한 복종으로써, 섬기는 습관을 얻는다.

영혼은 이미 천주와
그토록 총명하고, 그처럼 사람을 성화하시는 의지 외에 있어서는
사람도 사건도 보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로써 그처럼 변덕스럽고 자기 정욕대로 되는 것,
또는 짚부스러기와 같이 산들바람에도 옮겨지는 것을 그친다.

그는 항상 변함 없는 평온함을 간직하고,
견고한 사상, 확고한 결의 안에 있어 사업에 견인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성공에도 교만하지 않고, 실패에도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만사가 마찬가지로 천주의 손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있다.

천주의 의지가 그의 소망의 유일한 기준이므로
그는 다만
천주께서 바라시는 것만을 행하고, 천주께서 하시는 것만을 바란다.

이 영혼은 섭리의 배려에 자기 의지를 완전히 적합시켜,
그것이 자기의 경향에 맞든지 안 맞든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기꺼이 받아 들인다.」


성「원선시오.아.바오로」의 친구들은,
그의 생존 중 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
「원선시오 신부는 언제나 원선시오 신부다」라고.

이것은 순경, 역경 어느 것이나를 막론하고,
모든 경우에 있어 성인이 간단 없는 평온을 간직하고,
항상 있는 그대로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는 표현이다.

왜냐 하면, 
그는 완전히 천주의 손에 맡기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생활하며,
다만 주의 뜻만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 알퐁소「그리스도에의 사랑」9.1)

p.574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는,자기 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 지극히 거룩한 정신의 안정이다.
기분, 경향의 안정이 아니고, 정신의 안정이다.

왜냐 하면,
우리의 영혼의 하부(下部)가 야기하는 각가지 번잡함을
나는 결코 염두에 두지 않는데,
그대들도 역시 그렇게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경과 순경, 비애와 위로의 어느 것에도,
무감각의 때에도, 애정을 느낄 때에도,
우리는 정신의 상부에 있어,
끊임없는 평온 안에 항상 확고부동하게 자신을 견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비둘기는 슬플 때에도 즐거운 때와 같이 지저귄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새끼를 잃어 나무 가지 위에서 울고 있는 그들을 보라.
또한 기쁨에 충만돼 있을 때의 그들을 보라.
그들은 조금도 음성을 바꾸지 않고,
기쁨이나 슬픔 어느 것을 나타내는데도, 같은 소리로써 한다.


이런 점에 관해서 『욥』은 훌륭한 모범이다.
그는 만든 모든 노래를 같은 음조로 노래하였다.

천주께서 그를 부유하게 하셨을 때,
이 세상에 있어 바랄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주셨을 때,
그의 찬미가는
『주의 거룩한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것은 또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의 그의 사랑의 찬미가였다.

번민이 극도에 달했을 때, 그는 무엇을 하려 했던가.
그는 슬픔의 노래를 기쁨의 찬미가와 같은 음조로 노래한다.

『주 내게 자식과 재보를 주셨도다. 주 그것을 앗으셨도다.
그 거룩한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천주의 거룩한 이름은 항상 찬미를 받으소서!』라고.

그와 같이 우리도 모든 경우에 임하여,
『주의 거룩하신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라는
이 가장 사랑스러운 찬미가를 항상 같은 음조로 노래하면서,
행복도 불행도 위로도 모두 천주의 손에서 받고 싶다.」(「대화편」7)


p.577

그처럼 유쾌한 그처럼 훌륭한 정신의 평온을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는 자신이 완전히 소유하고 있었다.
성녀「요안나.드.샹딸」은,
그가 어디에서 그것을 구해 얻었는지 가르쳐 준다.

「그의 방법은 드물게 보는 존경과 신뢰로써,
사랑하는 아들로서 천주의 어전에
극히 겸손되이 극히 미소하게, 극히 비천한 이로서
처신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의 만년 무렵에는,
그는 만사에 있어 오직
천주만을 바라고, 천주 만을 사랑하며, 천주만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읍니다.

그리고 자주 천주께 빼앗기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천주 외에 이 세상에서 나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곧잘 말하였습니다.

평소 그이 안에 볼 수 있었던
저 관대한, 저 모든 것에 걸쳐서의 무관심은
이 완전한 일치에서 생긴 것입니다.


『신애론』의 제9편에서 다루고 있는
이 거룩한 무관심에 관해서 읽을 적마다,
나는 그가 가르치는 바를 각기의 경우에 스스로 실행했다는 것을
확실히 회상하고 있읍니다.

그가 임종하는 날까지, 그토록 실천하신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는다』 라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훌륭한 말씀은
다만 온전히 무관심이 되어, 그리고 자아에 죽은 이에게서만
우러나는 것입니다.

그의 정신의 평온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을만큼 탁월한 것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누가 무슨 일로 그가 그 태도를 바꾼 것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578
그래도 나는, 그가 치열한 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하였읍니다.
물론, 그는 그런 것을 강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이 모욕당하고,
또한 인인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등,
이런 경우
그는 침묵하고 천주와 함께 자기 안에 물러가 숨는 것이 었읍니다.

그리고 거기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는데,
그러나 또한 일어난 불행한 일을 신속히 조정하는데 힘쓸 것을
결코 소홀히 하지는 않았읍니다.」(「성 프란치스꼬.살레시오전」부록)


이 변함 없는 정신의 평온을 항상 간직하는 영혼은 복되도다!
또한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