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19권

소리-무화_천상의책{19권 25장}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과 그저 복종하며 사는 사람의 비유

은가루리나 2016. 2. 4. 00:42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9-25



1926년 5월 31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과 그저 복종하며 사는 사람의 비유




1 계속 하느님 뜻의 빛에 싸여 있다. 

이 빛의 끝없는 바다에 잠겨 있으면서도 

나의 하찮은 지성은 

단지 빛의 입자 몇 개와 작은 불꽃 몇몇을 간신히 건질 수 있을 뿐이다. 

영원하신 뜻의 이 끝없는 바다가 품고 있는, 

많기도 많은 진리와  지식과  행복들(의 빛과  불꽃들) 중에서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건진 적은 빛에 대해서마저 

글로 옮기기에 적절한 말을 찾아내지 못하기가 일쑤이다. 

여기에서 '적은' 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결국 생략하게 되는 '많은' 것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나의 비천하고 빈약한 지성에게는  넘치도록 가득 차기에 족한 양이다. 

러니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바닷물 속으로 잠수하여 들어간 사람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물이 사방에 있어 온몸이 젖고  어쩌면 내장 속까지도 물이 차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다에서 나왔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물을 몸에 지니고 있겠는가? 

아주 적게, 그러니까 바다에 남아 있는 물에 비하면 

의 없는 양이라고 할 만큼  적게 지니고 있을 것이다.


4 그가 바다 속에 있었다고 해서, 

물이 얼마나 많은지, 물고기의 종류와 양이 어느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지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게 할 수 없다. 

자기가 바다에서 본,  얼마 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내 하찮은 영혼도 그렇다.


5 그 뒤 내가 여전히 그 빛 안에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말씀하셨다. 




"딸아, 이런 것이 내 뜻의 빛의 일치이다. 

내 뜻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확실히 그 안에 자리하도록 하기 위해

내가 너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다. 

내 뜻 안에서, 이 빛의 일치 안에서 사는 사람과 

내 뜻에 그저 복종하며 사는 사람의 큰차이에 대해서다.




6 네가 이를 잘 알아듣게 하기 위해 저기 지평선 위에 떠 있는 태양을 비유로 들겠다. 

태양은 하늘 궁창에 떠 있으면서  땅의 표면에 빛살들을 퍼뜨린다. 

보아라. 땅과 태양 사이에 일종의 합의 같은 것이 있다. 

즉, 태양이 땅을 어루만지면  땅은 태양의 빛과 어루만짐을 받는다. 

땅은 이 빛의 어루만짐을 받으며  태양에게 복종함으로써  빛이 내포한 효과들을 받는다.


7 이 효과들이 땅의 표면을 변화시킨다. 

땅을 다시 녹색으로 바꾸고, 꽃이 피게 하고, 

초목의 발육을 왕성하게 하고, 열매가 영글게 하고, 

다른 놀라운 일들도 많이 보이게 하는데, 

이 역시 언제나 햇빛의 효과들에 의해 생기는 것들이다.



8 하지만 

태양은 그것의 효과들을 주되, 그 빛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열정을 다하여 빛의 일치를 보존한다. 

그러므로 그 효과들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에, 

땅이  때로는 꽃이 만발한 모습이고  때로는 헐벗은 모습이다. 

가련하게도  땅이 거의 철마다 바뀌며 계속적인 변화를 겪는 것이다.


9 만약 태양이 땅에게 그 효과들과 함께 빛도 준다면, 

땅은 태양으로 바뀔 것이며  더 이상 효과들을 달라고 애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땅이 스스로 안에 빛을 지니고 있는 이상, 

태양이 내포한 효과들의 원천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0 위와 같은 영혼이 내 뜻에 맡기고 복종하며 사는 영혼이다. 

즉, 내 뜻 안의 효과들만으로 사는 영혼이다. 

그런 영혼은 빛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영원한 의지의 태양' 안에 있는 효과들의 원천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거의 땅과 같은 모습이 된다. 

덕행에 있어서도  때로는 유덕하고  때로는 무덕한가 하면, 

상황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변하기도 한다.


11 더욱이 언제나 내 뜻에 복종하지 않으면, 

햇빛의 접촉을 거부하는 땅처럼 되고 만다. 

사실 땅이 햇빛의 효과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햇빛의 접촉을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풀잎 하나도 자랄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 그것이 죄를 지은 이후 아담의 상태였다. 

그는 (내 뜻의) 빛의 일치를 잃어버렸고, 

따라서 '내 뜻의 태양' 이 지닌 좋은 것들과  효과들의 원천을 잃어버렸다. 

그러는 '태양이신 하느님' 의 충만을 내적으로 느낄 수 없었고, 

자기의 창조주께서 자기 영혼 깊은 곳에 두신 그 빛의 일치를 느낄 수도 없었다. 

그것이  그에게 그분과 비슷한 모습을 부여하면서 

그를 그분의 충실한 모상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13 죄를 짓기 전의 아담은 

그 빛의 일치의 원천을 자기 창조주와 함께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하는 각각의 작은 행위마다 빛살이 되었다. 

그는 모든 피조물 안에 침투하며  자기 창조주에게로 가서 그 중심에 정착한 채, 

창조사업 전반을 통하여 인간을 위해 만드신 모든 것에 대한 사랑과 보답을 

그분께 가져왔다. 

그는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는 사람, 하늘과 땅 사이에 일치의 화음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14 하지만 그가 내 뜻을 물리치자마자, 

그의 행위들은  더 이상 하늘과 땅을 꿰뚫는 빛살과 같지 않고, 

그 자신의 작은 밭만을 영역으로 하는  푸성귀나 꽃처럼 위축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피조물 사이에서 조화를 잃은 불협화음이 되고 말았다.


15 오, 얼마나 참담한 타락이었는지! 

아담은 자기가 상실한 빛의 일치를 두고 한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빛의 일치가 아담을 모든 조물 위에 드높였고, 

그를 땅의 신(神)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6 그런데, 딸아, 내가 너에게 한 말을 통하여 너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란  

내 뜻이라는 빛의 일치의 원천을 소유하는 것이요, 

이와 함께 내 뜻이 지닌 효과들을 전적으로 충만하게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니 빛, 사랑, 흠숭 등등이 그런 사람의 각 행위에서 (하늘로) 올라온다.


17 이 피조물은 그 자신이 

(모든 피조물의) 각 행위에 대한 행위, 각 사에 대한 사랑이 되어, 

햇빛처럼 모든 것 속에 스며들고  모든 것을 일치시키며  모든 것을 자기 안에 모아들인다. 

또 번쩍이는 광선처럼 

자기 창조주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만드신 모든 것에 대한 보답과 

하늘과 땅 사이의 참된 일치의 화음을  그분께 가져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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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런즉 

'내 뜻의 태양' 이 내포한 좋은 것들의 원천을 소유하는 것과 

내 뜻의 효과들로 사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는 태양의 차이와 유사한 차이다.


19 태양은 자신의 빛과 그 효과들을 가득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타는 듯 이글거리며  장엄하게 번쩍이고,  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어루만지지만   그 자신에게는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다. 

아무에게도 자기에게 손댈 허락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가 감히 그 위에 자리를 잡으려고 들면, 

태양은 그 빛으로 그를 덮고  눈멀게 하며  때려눕힌다.


20 그 반대로   

은 모든 것이 아쉬운 곤궁 속에 있다. 

어루만져 주기를 기다리며  헐벗은 상태로 있다. 

만일 햇빛과 이 빛의 작용이 없다면, 

땅은 더러움과 비참함에 절은 음침한 감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뜻 안에 사는 사람과 내 뜻에 복종하는 사람 사이에는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있어서 

숫제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21 죄를 범하기 전의 아담은 이 빛의 일치를 소유하고 있었,

범죄 이후에는 일생토록 그 소유권을 되찾지 못했다.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는 지구에게 일어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 그에게 일어났으니, 

한 자리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돌면서  태양과 맞서 밤을 형성한 것이다.


22 그러니 아담을 다시 (본자리에) 정착시켜 빛의 일치를 누리게 하려면, 

(죄를 대속하여 그를 구원해 줄) 구속자가 필요하였고, 

이 구속자는 (모든 면에서) 아담을 뛰어넘는 존재여야 했다. 

(추락한) 그를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신적인 힘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 구원사업의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23 나의 천상 엄마 역시 이 빛의 일치를 소유하셨다. 

이 때문에 그분은 태양 이상으로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실 수 있다. 

그분과 지고하신 임금님 사이에는 

결코 밤 시간이나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끼어든 적이 없었고, 

언제나 환한 대낮이었다.


24 내 뜻의 빛의 이 일치로 말미암아

매 순간 하느님의 전 생명이 내 엄마 안에 흘러들었고, 

이 생명이 빛과  기쁨과  행복과  신적 지식의 바다들을,

또 아름다움과  영광과  사랑의 바다들을 그분에게 가져다주었다.


25 그러자 그분은 

그 모든 바다들을 그분 자신의 소유인 양 당당하게 창조주께 가져가셨으니, 

이는 그분의 창조주께 당신의 사랑과 흠숭을 증명하시려는 것이었고 

당신의 아름다움으로 창조주를 매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따라서 

한층 더 많고 새로운 아름다움의 바다들이 (내 엄마 안에) 흘러들게 하셨다.


26 그분은 너무나 많은 사랑을 소유하신 나머지 

마치 본성적으로 그러한 것처럼  모든 존재를 사랑하실 수 있었고, 

하느님을 흠숭하며 모든 이의 (모든 결함을) 보상하실 수 있었다. 

이 빛의 일치 안에서 이루어진 그분의 행위는  

가장 작은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가치가 있어서) 

모든 피조물의 모든 행위들을 합친 것과 이들 중 가장 큰 행위들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27 다른 모든 사람들의 희생과 활동과 사랑은 

그러므로  이 존엄하신 여왕의 행위들에 비하면, 

태양 앞에 있는 조그만 불꽃,  바다 앞에 있는 조그만 물방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여왕은 지고하신 의지의 이 빛의 일치에 힘입어, 

모든 것을 정복하고  바로 자기 창조주까지 이기실 수 있었다. 

자기 창조주를  당신 모태 안에 갇혀 계시게 하실 수 있었으니 말이다.  




28 아, 오직 내 뜻의 빛의 일치만이

- 만물을 다스리는 여왕이 소유하셨던 이 빛의 일치만이,

여왕의 행위들을  수인(囚人)이 되실 하느님께 합당한 것이 되게 하면서, 

일찍이 없었던 그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29 아담은 이 빛의 일치를 상실함으로써  온 존재가 엉망진창이 되었고, 

그 자신이나 그의 자손들이나  대대로 어둠과 나약과 욕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반면에

탁월하신 동정녀께서는  결코 그분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올곧게 '영원하신 태양' 을 마주하고 계셨으므로 

그분께는 언제나 대낮이었고, 

모든 세대에 걸쳐 '의로움의 태양' 이 떠오르는 날이 되게 하셨다.



30 이 동정이신 여왕께서 당신의 티 없으신 영혼 깊은 곳에 

하느님의 영원하신 의지의 빛의 일치를 보존하는 일만 하셨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피조물이 우리에게 주어 마땅한 영광을 돌려주고, 

그 모두의 행위와 사랑의 보답을 주기에 족했을 것이다. 

우리의 신성은 이 여왕을 통하여, 

내 뜻의 힘으로,

창조사업에 의해 받으려고 작정했던 기쁨과 행복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31 그런즉 그분은 

내 뜻의 여왕, 내 뜻의 어머니, 내 뜻의 창시자, 내 뜻의 기초, 

내 뜻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고, 

이 거울은 모든 이가 

그분에게서 내 뜻의 생명을 받기 위하여 스스로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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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나중에 나는 그 빛에 잠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지고하신 의지의 이 빛의 일치 안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말씀을 이으셨다.



33 "딸아, 죄를 범하기 전의 아담과 내 천상 엄마는 그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에 의하여 내 뜻의 빛의 일치를 소유하였다. 

그 반면에  나의 인성은 스스로의 능력에 의하여 그것을 소유하였다. 

내 인성 안에는 

'지고한 의지의 빛의 일치' 뿐만 아니라  '영원한 말씀' 도 있었기 때문이다.


34 게다가 나는 아버지와 성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진정하고도 완전한 '두 장소 동시 공존' (bilocation) 현상이 일어났다. 

즉, 내가 하늘에 머물러 있는 한편  내 엄마의 태 안에도 내려왔다. 

또한 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계신 아버지와 성령께서도 

내 엄마의 태 안에 내려오셨고, 

동시에 하늘 저 높은 곳에 머무르기도 하셨다."




35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의문이 생겼다. 

성삼위께서 다 고통을 받으시는지, 아니면 '말씀' 께서만 받으시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36 "딸아, 

아버지와 성령과 나의 관계는 불가분적이니 만치  

두 분도 나와 함께 내려오셨고, 나도 그분들과 함께 하늘에도 머물러 있었다. 

그렇지만 

대속(代贖)하고 고난을 받으며 인간을 속량하는 임무는  나에게 맡겨져 있었다. 

아버지의 아들인 내가 하느님을 인간과 화해시키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37 신성은 고통을 받을 수 없다. 

더없이 작은 고통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성삼위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면서  

하느님의 처분대로 자신을 맡기고 

전례가 없는 고통을 겪으며 거룩한 모양으로 대속하고 있었던 것은 

나의 인성이었다.


38 그런데 내 인성은 

내 뜻의 능력으로 내 뜻뿐만 아니라 '말씀' 도 충만했고, 

성삼위의 불가분성의 결과로  아버지와 성령도 충만했기 때문에, 

무죄한 아담과 내 엄마마저 훨씬 더 완전하게 능가하였다.


39 사실 그 양자는 은총으로, 나는 본성적으로 그러했던 것이니, 

그들은 빛과 은총과 힘과 아름다움을  하느님에게서 끌어내어야 했지만, 

나의 내면에는 빛과 아름다움과 은총 등등이 솟아 나오는 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성적으로 그러한 나와  은총으로 그러한 내 엄마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기에, 

내 인성 앞에 서면  그분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40 그런즉, 딸아, 주의를 기울여라. 

너의 예수는 (은혜로운) 물이 솟아오르는 샘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너에게 줄 것이 있고,  너도 언제나 받을 것이 있다. 

내 지고한 뜻에 대하여, 또 이 뜻이 내포한 놀랍고도 놀라운 것들에 대하여

내가 너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과  하나하나 나열해 주고 싶은 것이 어찌나 많은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언제나 할 말이 있고, 

아무리 오래도록 해도  그 긴 이야기를 다 하기에는 시간이 족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이 짧은 세상살이 동안은 물론, 심지어 영원 속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