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30 / 4. 에고와 이기주의로서의 마야 □ 에고를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은가루리나 2016. 9. 19.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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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고를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95. <나>라는 이 말을 잘 관찰하라.

이는 에고의 과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을 뽑아내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나를 억눌러라. 그리고 신의 종으로 남아 있거라.

에고가 그 자신을 신의 종이라고 느낀다면 그 에고를 우리는 <익은 에고>라 한다.




96. 샹카라차리야(Sankaracharya)*에게 한 제자가 있었다.

오랫동안 스승을 따랐으나 전혀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

어느날 스승이 앉아 있을 때 누군가가 등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스승 : 누구냐.

  제자 : <나>입니다.

  스승 : <나>가 그렇게 소중하거든 

         그것을 무한하게 확장시키든지 (너 자신을 우주화하든지) 

         아니면 모두 버려라.



97. <나>라는 이 느낌을 버릴 수 없다면 신의 종인 <나>로서 남게 하라.

나는 신의 종이다. 나는 신을 신봉하는 자다

----- 이런 생각에 뿌리를 둔 에고는 그렇게 해롭지 않다.

단것은 소화불량의 원인이 되지만 그러나 꿀은 예외다.


신의 종인 <나>, 신을 신봉하는 자로서의 <나>, 어린아기로서의 <나>,

----- 이런 <나>는 물 위에 놓인 막대기의 그 가장자리 선과 같아서

오래지 않아 곧 지워져 버린다.



98. 꿀은 여타의 단 음식과 같이 몸에 해롭지는 않다.

그 자신을 신의 종으로 생각하는 <익은 에고>는 

<덜익은 에고>와 같이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신에게 보다 가까이 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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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베단타철학의 창시자. A.D. 788~820.